
작년 로마 마스터스 결승, 새벽에 알람 맞춰놓고 일어나서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시너의 26연승 행진이 그날 끊겼거든요. 알카라스가 7-6, 6-1로 가져간 경기였는데, 1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손에 땀이 났던 게 아직도 기억나네요. 화면 너머로 봐도 둘 다 한 포인트 한 포인트에 목숨 거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2025시즌 둘은 총 6번 만났고, 신기하게도 **여섯 번 다 결승전**이었습니다. 4강까지 가서 다른 선수한테 발목 잡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뜻이에요. 결과는 알카라스 4승, 시너 2승. 숫자만 보면 알카라스 우위인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1. 2025시즌 6번의 결승전 기록

이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했던 건 역시 롤랑가로스 결승입니다. 시너가 4세트 5-3, 자기 서브 게임에서 매치포인트를 3개나 잡았어요. 첫 번째는 알카라스가 과감한 다운더라인 백핸드 위너로, 두 번째는 시너의 범실 유도로, 세 번째는 긴 랠리 끝에 드롭샷으로 받아쳤습니다. 셋 다 살려낸 뒤 결국 그 게임을 따냈고, 거기서 흐름이 완전히 넘어가버렸어요. 5세트까지 끌고 가서 결국 알카라스가 우승했습니다. 경기 시간만 5시간 29분, 프랑스오픈 결승 역대 최장 기록이에요.
그날 저는 동호인 모임 단톡방이 새벽 내내 시끄러웠던 게 기억나요. 다들 잠 안 자고 보고 있었던 거죠. 4세트 매치포인트 순간에는 단톡방이 거의 실시간 중계처럼 돌아갔고, 5세트 들어가서는 다들 "이제 진짜 못 자겠다"는 메시지만 줄줄이 올라왔습니다.
2. 표면별로 보면 진짜 강점이 갈린다
통산 전적(2021~2025)을 표면별로 쪼개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나옵니다.
- 하드코트: 알카라스 6승 2패
- 클레이: 알카라스 4승 2패
- 잔디: 시너 2승 0패
- 실내 하드: 1승 1패
즉 알카라스는 야외 코트 전반에서 강하고, 시너는 잔디에서만큼은 완벽한 전적을 갖고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생각해보면, 두 선수의 타구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아요. 알카라스는 코트 전후좌우를 가리지 않고 슬라이스, 드롭샷, 탑스핀을 섞어 쓰는 다재다능한 스타일이라 바운스가 높고 느린 클레이나 변수 많은 하드코트에서 유리합니다. 반면 시너는 베이스라인에서 정직하게 강타를 주고받는 타입인데, 잔디는 바운스가 낮고 빨라서 랠리가 짧게 끝나니까 이 스타일이 오히려 잘 먹히는 거죠. 윔블던에서 시너가 이긴 것도 우연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3. 그리고 2026년, 흐름이 다시 바뀌었다
여기서 끝났으면 "알카라스 우위"로 마무리됐을 텐데, 2026년 4월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결승**에서 시너가 알카라스를 7-6, 6-3으로 꺾고 세계 1위를 탈환했습니다. 통산 전적은 여전히 알카라스가 10승 7패로 앞서 있지만, 최근 흐름만 보면 시너가 다시 올라오고 있는 그림이에요.
이 라이벌리의 진짜 매력은 여기 있다고 봅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앞서가질 않아요. 한 시즌에 6번을 붙어도 그때그때 흐름이 바뀌고, 표면이 바뀌면 결과도 또 바뀝니다. 직접 코트에서 뛰는 입장에서 보면, 이 정도로 다른 스타일의 두 선수가 매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게 오히려 더 신기해요. 보통 라이벌 구도는 한쪽이 점점 우위를 굳히기 마련인데, 이 둘은 그 공식을 계속 깨고 있습니다.
4. 동호인 입장에서 본 둘의 차이
라켓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알카라스는 바볼랏 퓨어에어로 98(목 부분에 납테이프 5g을 추가한 커스텀 세팅)을 쓰고, 시너는 헤드 라켓을 씁니다. 둘 다 양손 백핸드를 쓰지만 스윙 궤적은 꽤 다릅니다. 시너는 백핸드에서 군더더기 없이 짧고 빠르게 끊어 치는 반면, 알카라스는 백스윙을 좀 더 크게 가져가면서 탑스핀을 더 많이 겁니다.
스트링 세팅도 흥미로운데, 알카라스는 텐션을 비교적 타이트하게 잡아서 컨트롤 위주로 가져가는 반면, 시너는 좀 더 느슨한 텐션으로 파워를 더 살리는 쪽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레슨받으면서 코치님한테 들은 얘기인데, 아마추어가 백핸드 안정성을 키우려면 시너 쪽 스타일이 배우기 더 쉽다고 하더라고요. 백스윙이 짧으니 타이밍 잡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거죠. 저도 요즘 레슨 때 그 부분을 의식하면서 연습하고 있는데, 확실히 임팩트 순간 컨트롤이 좀 더 안정적으로 느껴지긴 합니다.
다음 맞대결이 언제, 어느 표면에서 열릴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 텐션이면 또 보게 될 겁니다. 다음 클레이 시즌 전까지 어느 쪽이 더 좋은 폼을 유지하고 올라올지, 개인적으로는 그게 제일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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